군대 없는 나라에서 만난 작은 평화 -아다치 리키야, 『군대를 버린 나라』
*『아까운 책 2012』(부키) 에 쓴 서평입니다. 2011년에 나온 책들 중 베스트셀러는 되지 못했지만 베스트 책인 것 분명한 책들을 소개한 서평집인데 모르고 지나쳤던 책들이 꽤 많네요.
작년에 나온 책들 중 아까운 한 권을 꼽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아까운 책이 한둘이 아닌 탓이었지요. 좋은 책이 조명을 못 받는 것은 필자나 출판사뿐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인데, 그래서 더욱 책을 고르는 손길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마지막에 남은 책은 둘, 하나는 다큐멘터리스트 박수용의 에세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이고 다른 하나는 아다치 리키야가 쓴 『군대를 버린 나라』입니다.
20년간 시베리아호랑이를 좇은 박수용의 탐사기는 절대고독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 사무치고, 일본의 평화운동가 아다치 리키야가 코스타리카에서 찾은 평화의 정치학은 군대 앞에선 ‘닥치고 받들어 총’을 요구하는 이 나라의 현실 때문에 외면하기가 힘듭니다. 둘을 놓고 열흘 넘게 고심한 끝에 마침내 『군대를 버린 나라』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군대를 버리기는커녕 군대에 대해 말만 잘못 해도 설 자리를 찾기 힘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버린 나라』는 제가 오래 전부터 고대하던 책입니다. 몇 해 전, 한국을 찾은 코스타리카 국회의원들에 관한 신문기사를 봤는데 청바지 입은 의원들의 격의 없는 모습이 놀랍더군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그 나라에 군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바지 차림으로 의정 활동을 신기한데 심지어 군대가 없다니!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했지만 코스타리카에 관한 변변한 책 한 권 없으니 알 수가 있나요. 그러다 작년에 이 책을 보고 드디어 궁금증을 풀겠구나 싶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물론 군대가 없는 나라는 코스타리카만이 아닙니다. 교황이 사는 바티칸 시국을 비롯해 스위스 바로 옆에 있는 리히텐슈타인도 군대가 없고, 코스타리카와 같은 중미에 위치한 도미니카도 30여 년 전 군대를 해체했으니까요. 심지어 법적으로는 일본도 군대가 없는 나라이지요.
하지만 외국 근위대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는 교황과 바티칸, 스위스 국방력의 도움을 받는 리히텐슈타인, 미군이 국방을 전담한 도미니카, 그리고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본 등과 달리, 코스타리카는 어떤 군대도 없는데다 대통령이 경호를 받지도 않으니 다른 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더구나 코스타리카에 이웃한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이 정부군과 게릴라 간의 전투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거나 군부 쿠데타에 시달리는 걸 생각하면, 이 나라의 비무장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지요.
이 책을 쓴 리키야는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궁금해서 아예 코스타리카에 살면서 그 나라를 연구한 사람인데, 그가 전하는 기적의 비밀은 의외로 ‘민주주의’입니다. 처음엔 민주주의가 평화의 열쇠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더군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 그래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에선 병역을 의무로 삼을 만큼 군대를 중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리키야가 공원에서 만난 코스타리카 할아버지는 아니랍니다. 강한 군대가 있어야 유지되는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거라고, “만일 군대가 있으면 거기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없다”고 말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라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 얘길 들으니 민주주의가 뭘까, 새삼 의문이 생깁니다. 다행히 코스타리카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똑 부러지게 정리해줍니다. 민주주의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지위에서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평화란 폭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폭력은 단지 무력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위나 힘의 우위를 이용해서 상대를 억압하는 것을 모두 뜻합니다. 권력이 있다고, 지위가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상대의 자유로운 표현을 억누른다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평화는 민주주의와 연결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을 배제하며, 따라서 평화를 뜻합니다. 코스타리카의 할아버지와 어린이가 민주주의는 군대와 양립할 수 없다고, 평화란 “민주주의, 인권, 환경”이라고 서슴없이 말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우리는 흔히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인의 가치관에서 평화는 그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즉, 단순히 전쟁이 없다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편안한 세상을 만드는 실천, ‘반대’를 넘어 ‘긍정’의 세계를 지향하는 적극적인 비전이 바로 평화인 것이지요. 그래서 코스타리카인들은 군대를 폐지하고, 교도소의 콘크리트 담장을 없애고, 어린이도 위헌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누구나 무상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평화롭게 살려면 모든 사람이, 어린이도 외국인도, 심지어 범죄자조차 똑같은 인간으로 살 수 있어야하니까요.
이 책에서 필자가 군대 없는 국가의 시스템보다 코스타리카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민주주의가 없었다면, 평화는 곧 민주주의라는 국민들의 확신이 없었다면, 1948년 12월 군대 폐지를 선언했다 해도 그 뒤 얼마든지 군대를 복원하고 재무장했을 테니까요.
실제로 지난 60여 년간 코스타리카는 내부의 쿠데타 음모와 내전, 이웃 니카라과의 무장침입, 그리고 1980년 콘트라를 둘러싼 산디니스타 정부와 미국의 대립으로 인한 위기 등, 비무장을 위협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었습니다. 특히 1980년 위기는 심각했지요.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는 중미에서, 면적은 한반도의 1/4에 불과하고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불도 안 되는 작고 가난한 나라가 미국의 뜻을 따르지 않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콘트라 기지를 내주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신 <적극적 영구 비무장 중립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처음에 미국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중앙아메리카 각국의 영부인들을 통해 평화협정을 끌어내고 전 세계를 상대로 외교를 펼친 아리아스 대통령 때문에 결국은 코스타리카의 중립선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자는 미국적 가치로 선전해온 ‘평화와 민주주의’를 미국이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며, 코스타리카의 외교술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 대목을 읽는데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떠오르더군요. 처음 기지 건설을 추진한 것은 진보로 불리는 노무현 정부였고, 현재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은 보수에 속하는 이명박 정부이니, 이 문제에 관한 한 둘은 별 차이가 없는 셈입니다. 기지 건설을 주장하는 논리도 같습니다.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강한 국방력이 평화를 약속한다는 것이지요.
저도 꽤 오래 인정해왔던 익숙한 논리인데, ‘군대를 버린 나라’ 코스타리카를 보고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평화는 무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전쟁 억지론(抑止論)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하며, 평화의 땅에는 무장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력에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외교가 얼마나 중요하며 강력한지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남한의 절반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가 무기가 가져올 수 없는 평화를 외교로 이루고, 세계사에 남을 원대한 비전을 실천하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물론 코스타리카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빈곤, 빈부격차, 불안정한 치안, 남성우월주의 등, 인권을 악화시키고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지요. 하지만 ‘고만고만한 게 좋다’며 천천히 함께 가는 프라 비다(Pura vida) 정신이 있는 한, 코스타리카의 평화는 쉬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아마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고만고만한 행복을 누리며 고만고만하게 평화롭게 살겠지요. 아, 그 고만고만한 평화가 왜 이리 부러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