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칼럼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

노바리 2011. 3. 3. 10:42

우연히 참여한 템플스테이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그 뒤로 일상에 지치고 사람들이 싫증날 때면 가끔 절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조용한 절집에서 라디오도 티브이도 없이 새소리와 풍경소리를 들으며 고즈넉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 안의 먼지가 조금은 사라진 듯, 마음이 개운하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절 식구가 채 열 명이 안 되는 아주 작은 절인데 그 중에는 중학생 남자애들도 있다.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랐다는 이 아이들은 그 또래 애들이 대개 그렇듯 시끄럽고 반항적이었다. 지난여름엔 밤늦도록 내 옆방에서 욕설을 하며 떠드는 바람에 치미는 화를 삭이느라 끙끙대기도 했다. 저 나이 때 애들이 그렇지 하며 이해를 하려다가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함부로 굴 때는 절로 눈길이 사나워졌다.

 

얼마 전 설 연휴를 앞두고 오랜만에 절에 갔다. 여느 때처럼 10대 사내애들이 있기는 한데 단정한 매무새부터 부드러운 말과 행동이 천방지축이던 그 애들과는 달랐다. 인솔교사인 듯, 젊은 여성 셋이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눈도 치우고 공부도 하는 모양을 보고 어디서 단체로 템플스테이를 왔구나 하였다. 떠나기 전 종무소에 들러 차 대접을 받았다. 눈이 많이 왔는데 고마운 선생님과 학생들 덕분에 무사히 내려갈 수 있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여자 분이 빙그레 웃으며 “제 딸들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인솔교사로 알았던 처자들은 그분의 세 딸이었고, ‘처음 보는 착한’ 학생들은 내가 사납게 노려보고 했던 바로 그 아이들이었다. 

 

중학교 교사라는 그분은 지난가을 우연히 절에 왔다가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쓰여서 틈만 나면 찾는다고 했다. “처음엔 다시 안 올 거잖아요 하면서 마음을 안 열더라고요. 그래서 꼭 다시 온다, 너희들이 잘하면 계속 올 거다 했지요. 그리고 자주 들여다보고 전화하고 그랬더니 애들이 마음을 열더군요.” 설을 앞두고 설빔도 챙겨줄 겸 딸들과 왔다는 그분은, 아이들이 정말 달라졌다는 내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분처럼 환히 웃을 수가 없었다. 요즘 애들 무섭다고, 세상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갖은 걱정을 다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적 없는 내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다. 늘 말뿐인 내가, 사랑보다 미움에 익숙한 내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아이들에게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그 선생님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공교육이 위기라느니 어쩌니 하지만 이런 선생님이 계시니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서울시 교육청이 체벌 금지를 선언한 뒤 논란이 뜨겁다. 안 그래도 교권이 무너졌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면학분위기를 만들겠냐고 걱정들이다. 하기야 성인인 대학생도 교수에게 맞으면서 배우는 세상이다. 때리고 맞으며 배운 지식으로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라서 매 값이나 건네는 재벌사장 밑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한심하고 쓸쓸하다.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절에 학교를 다니며, 구둣발로 정강이를 채이고 장작으로 손바닥을 맞았다. 지금도 그때 마음속을 채웠던 분노와 두려움이 생생하다. 사랑으로 가르친 여러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참기 힘들었으리라. 사람은 폭력에 약하지만 사랑엔 더욱 약하다. 그러니 이제는 체벌이 아니라 사랑을 말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들을 끝까지 기다려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게 우리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