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처방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 『우리 헌법의 탄생』

노바리 2009. 8. 5. 15:29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오늘날까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한 해 앞서 신헌법을 제정한 일본 역시 개헌 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60년 동안 9차례나 고치고도 모자라 다시 개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애초에 엉터리 같은 법이라 고칠 게 많은 건지, 아니면 워낙 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이 많아 그리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개정을 할수록 헌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토록 여러 번 손질했으니 헌법의 수준도 그에 대한 지식도 손색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선 툭하면 헌법을 문제 삼는데 정작 국민들은 헌법이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미국 독립선언에 대해선 잘 알면서도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헌법에 대해선 내용도 역사도 모르는 걸 당연시합니다.

.......

법학자 이영록이 쓴 『우리 헌법의 탄생』은 1948년 7월 17일 선포된 건국헌법의 제정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되돌아본 책입니다. 해방부터 정부 수립까지 격동의 3년사를 다룬 책들은 많지만, 이처럼 헌법에 초점을 맞춰 그 역사를 조명한 책은 드뭅니다. 더구나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고 최대한 역사적 실상에 다가가려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 큰 가치를 갖습니다. 자, 그럼 이 책이 말해주는 헌법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가 문을 엽니다. 이른바 제헌국회가 시작된 것인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이 국회의 성격입니다. 헌법제정회의와 일반 국회의 역할이 뒤섞여 있었던 겁니다. 헌법제정회의는 1787년 미국이나 1791년 프랑스 제헌의회처럼 헌법 제정만을 위한 한시적 의회입니다. 2005년 미군정에서 독립정부를 수립한 이라크도 총선거로 제헌의회를 구성해 헌법안을 마련한 뒤 국민투표로 헌법을 확정하고, 이 법에 따라 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구성했지요.


그런데 우리의 제헌국회는 한시적인 제헌의회가 아니었습니다. 헌법 제정을 한 뒤에도 입법기관으로서 계속 활동했던 겁니다. 헌법제정회의든 일반 국회든 어차피 국민이 뽑은 대표이긴 마찬가지인데 꼭 구분할 이유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부정적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부정적 여파란, 제헌의원들이 헌법이 성립된 뒤에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게 되면서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당장의 당파적 이해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입지와 당파의 정권 장악을 염두에 두고 만든 헌법이 백년대계를 책임질 수는 없을 터. 그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통령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