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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책을 버리면서 본문
책을 버렸습니다. 스무 해를 끌고 다닌 책들입니다. 예닐곱 번 이삿짐을 싸고 푸는 동안 여러 사람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지켜온 책들이지요. 하지만 보지도 않는 책들을 간직할 만큼 한가한 공간은 없는데 수십 권의 책들이 새로 생겼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새 책들을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릴 밖에요.
그런데 새 책이라지만 사실은 내가 버린 책들보다 더 오래된 헌책들입니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하고 제주도로 내려간 선배가 수십 년간 모아온 책들을 버린다기에 그 중 일부를 골라온 것이지요. 의식이 족한 뒤에야 책을 읽는 나와 달리 가난한 고학생 시절에도 입을 것 먹을 것을 아껴서 책을 산 선배입니다. 그렇게 모은 책들을 버리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속상한 마음을 헤아리다가 문득 내게 필요한 책을 가져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래서 책을 처분하는 날, 창고에 무더기무더기 쌓인 책 박스에서 눈에 띄는 책들을 골랐습니다. 언젠가 그럴 듯한 역사소설을 쓰겠노라 마음먹은 터라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대동야승』 같은 책들을 잔뜩 챙겼지요. 이미 소설을 다 쓴 것처럼 뿌듯하더군요. 집에 가져와서 털고 말리고 닦는 며칠 동안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장에 꽂으려니 책장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고. 고민 끝에 결국 청춘의 한 시절 나와 함께했던 책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제일 먼저 꺼낸 것은 학위논문을 쓸 때 장만한 수십 권의 자료집들. 책 사이사이 여전히 꽂혀 있는 누렇게 변한 간지들이 그 시절의 공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의 진보에 기여하는 역사학을 하겠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다짐하던 시절이었지요. 먼지투성이 책들을 꺼내며 그 시절의 포부와 고민을 돌아봅니다. 찌르르, 명치끝이 쓰립니다. 서랍이든 옷장이든 책장이든, 뭔가를 정리하기란 이래서 쉽지가 않습니다. 묵은 물건들이 불러오는 과거의 기억에 젖어버리기 십상이지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 묶습니다. 더운 여름날 두꺼운 하드커버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 온몸은 땀범벅이 됩니다. 간신히 맨 아래 책장 두 칸이 비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긴 세월 들춘 적 없는 다른 책들도 정리하기로 합니다. 본격적인 솎아내기가 시작됩니다.
맨 위 칸부터 차례차례 안 보는 책들을 골라내는데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구성체론, 민족해방운동 같은 단어들이 들어간 책들이 쑥쑥 뽑혀 나옵니다. 인문사회과학 신간들이 하루에도 두세 권씩 쏟아져 나오던 시절, 그 책들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학교 앞 서점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사들인 책들입니다. 그때는 그 책들이 세계를 설명하고 세상을 사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리라 믿었습니다. 오직 문제가 있다면 그 책들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내 아둔함뿐이라 여겨 더 조바심을 내곤 했지요.
오랫동안 한 번도 펼치지 않은 그 책들을 박스에 담으며 낙관적 열정으로 뜨거웠던 그 무렵의 나를 떠올립니다. 세상의 어떤 책도 세계를, 모순과 역설과 예외와 딜레마로 가득한 이 세계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오래 전의 내가 그립습니다. 어쩌면 삶을 위해서는 책을 읽기보다 책을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듭니다.
쿵, 갑자기 생긴 빈자리에 놀라 책 한 권이 쓰러집니다. 달력종이를 표지 삼은 제목 없는 책, 내 손으로 직접 복사하고 제본한 엉성한 모양의 책, 신동엽의 시집 『금강』입니다.
무도한 권력이 책읽기의 자유를 멋대로 빼앗던 시절, 『금강』은 금서였습니다. 대학 신입생인 내게 오빠는 금지된 그 책을 주며 조심해서 복사해 오라고,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그날 아침 교문에는 왜 그리 전경들이 많았는지요. 지레 얼굴을 붉히며 식은땀을 흘리는 신입생을 놀리고 싶었는지 전경 하나가 웃으며 가방을 보자더군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금강』도 나도 무사히 검속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도서관에서 생애 처음 금서를 읽었습니다. 막 복사한 따끈한 종이뭉치를 앞에 놓고 떨리는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내려갔지요.
“우리들이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짱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쳐들고 눈물이 마르기를, 솟구치는 격정이 가라앉기를 바랐는지요. 도서관 구석에서 가슴 조이며 『금강』을 읽던 봄날의 기억, 그것은 지금도 흉터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훗날 시절이 좋아져 정식으로 출판된 『금강』과 『신동엽 전집』을 산 뒤에도 복사한 종이들을 접고 풀칠해서 내 손으로 제본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금강』을 버리지 못한 것이겠지요. 한 편의 시가 나를 죽비처럼 내리쳤던 그 순간을, 그런 시를 읽은 자로서 시인에게도 시에게도 덜 부끄럽고 싶다는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러나 무정한 시간은 기억을 배반합니다. 한때 나를 온통 흔들었던 그 시도 읽지 않은 지 오래, 어느새 나는 부끄러움조차 상투가 되어버린 일상을 살며 제 허물을 세월에 묻는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머리도 어질어질합니다. 책을 읽는 것도 힘들지만 책을 버리기는 훨씬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들, 읽고도 배우지 못한 책들, 배우기만 했을 뿐 삶이 되지 못한 책들이 내 자신의 허영과 무지와 게으름을 일깨웁니다. 그 책들 중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버려야 내 자신의 허물을 버릴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책들 앞에서 막막했던 듯합니다. 세상의 책들이 다 모인 것 같은 도서관에선 더욱 그랬지요. 처음 도서관 구경을 한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직동에 어린이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갔지요. 한데 막상 수없이 많은 책꽂이에 수없이 많은 책들이 꽂힌 걸 보자 덜컥 멀미가 나더군요. 친구 집에 있는 세계명작동화 100권에도 압도당하던 내게 그보다 열 배, 스무 배가 훨씬 넘는 책들은 즐거움보다는 놀람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지요.
대학교에 들어가 개가식 도서관을 처음 접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내 키보다 큰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 그런 책장들이 빽빽이 늘어선 커다란 서고들, 그 안에서 나는 종종 길을 잃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책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적이 많았지요. 그렇게 서가에 넋을 빼긴 채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한 날이면, 내 자신의 변덕스런 호기심과 얄팍한 지성과 턱없이 야심 찬 지적 허영에 낙담하곤 했습니다. 언제쯤이면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과 읽을 수 있는 책이 어긋나지 않고 한 줄기로 모일 수 있을까, 막막함 속에서 바라곤 했지요
경이와 선망의 공간이던 도서관이 위로와 안식의 공간으로 바뀐 것은 학교를 졸업한 뒤 동네 시립도서관을 다니면서입니다. 번듯한 직장을 잡을 가망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잘하는 일은 더욱 없었던 내게 동네 도서관은 유일한 안식처였지요. 갈 데 없는 나는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러곤 한눈에 거의 다 들어오는 만만한 크기의 서고를 둘러보며 그때그때 내 맘에 들어오는 책들을 읽었습니다.
하기 싫은 건 알아도 하고 싶은 건 모르는 내가 한심해서 욕망에 관한 책들을 들추기도 하고,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다 지칠 때면 도망치듯 도서관에 와서 시간과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책장 한구석에서 낡아가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은 것도 그때였네요. 워낙 어려워서 번역서 2종과 해설서 2종을 죽 늘어놓고 한 문장 한 문장 베끼다시피 하며 읽었는데, 이전 같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에 짜증이 나고 좌절했을 텐데 그때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난해한 낱말 하나, 구절 하나에 온 정신을 모으고 나면 환자와 씨름하며 곤두섰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갈피가 잡혀서 좋았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난해함으로 복잡한 심경을 치유한 셈인데, 때문에 정작 책은 끝까지 읽지도 못했고 물론 존재도 시간도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러는 사이, 읽어야 하는 책에 대한 강박이나 읽히지 않는 책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 책들로 빼곡한 책장 앞에서 주눅이 들던 내가 그 무렵엔 서가 하나를 정해놓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읽겠노라, 무식한 욕심을 내기도 했지요.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 진리, 필연, 법칙 같은 것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 나를 알고 싶어서 내 식대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았냐고요? 부끄럽게도 아둔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넘게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는데 갈수록 모르는 것만 많아집니다. 마침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다”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경지에 오른 것일까, 잠깐 뿌듯해하지만 그 또한 오리무중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선언할 만큼 모르는 것을 분명히 알지도 못하니까요.
한심하다고, 책을 읽은 결과가 고작 그거냐고 힐문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늘 책을 끼고 살지만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책이 여러 길 중 하나를 보여줄 순 있지요. 허나 그것이 내 길이 되려면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며 직접 걸으면서 스스로 길을 내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책 속에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 안에 길이 있는 셈이지요.
그럼 왜 책을 읽느냐고요? 왜 아픈 허리에 파스까지 붙여가며 딱딱한 도서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느냐고요? 아마도 습관이고 미련이겠지요. 아릿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길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이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만든 습관. 그 미련한 습관 덕분에 얻은 것도 있으나 잃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틈만 나면 도서관을 찾는 그 습관을 아직은 버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묵묵히 자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편안한 고독감을 놓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며칠 전 일이 떠오릅니다. 약속이 있어 홍대 앞에 갔다가 근처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서가를 둘러보며 자료를 찾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아는 척을 합니다.
“언니, 저예요.”
따스한 목소리가 오래 전 기억 속의 얼굴을 불러옵니다. 20여 년 만에 보는 학교 후배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간의 안부를 묻습니다. 예전 추억과 이즈음의 근황이 오가고, 도서관에 자주 오냐고 내가 물었습니다. 후배의 얼굴이 흐려집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중병에 걸리셨다고, 두 분을 간호하다 잠시 짬을 내 도서관을 찾는다고, 잠깐이지만 그렇게 책 사이에서 쉬고 나면 숨통이 트인다고, 그녀는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서가 아니라 그저 책을 읽는 것, 아니, 책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머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습니다. 십여 년 전 나도 비슷한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긴 시간의 격절을 잊은 채, 우리는 붉어진 눈으로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여전히 도서관에 가고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기획회의, 2012, 8월 둘째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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